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노원인애한의원 대표원장 배광록 교수입니다.
“생리를 몇 달씩 안 해서 피임약을 먹으면 생리는 나옵니다. 그런데 약을 끊으면 다시 생리를 안 해요.”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에게서 매우 흔하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봐야 합니다.
생리가 나왔다는 것과 정상적으로 배란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치료에서 정말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단순히 출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난포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배란이 이루어지고, 다시 일정한 월경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난소의 기능입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단순한 생리불순이 아닙니다.
배란장애, 고안드로겐혈증, 인슐린저항성, 난포 성장의 불균형 등이 서로 얽혀 나타나는 복합적인 내분비·대사 질환입니다. 따라서 “생리가 안 나오니 생리만 나오게 하자”는 접근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약치료의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소정 교수와 제가 공동저자로 발표한 연구에서는 양측성 자궁내막종 수술 이후 조기난소부전과 무월경이 발생한 환자에게 한약, 약침, 뜸 등의 한방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치료 후 다시 월경이 나타났고 높았던 FSH가 정상 범위로 감소하는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성의 월경을 단순히 ‘출혈 여부’로만 평가하지 않고 난소기능과 호르몬 변화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제가 발표한 또 다른 조기난소부전 증례에서도 한약치료 이후 월경주기가 회복되고 자연임신과 출산까지 이어진 경과를 보고했습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에서도 이런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리를 규칙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배란이 일어나는지, 난포가 제대로 성장하는지, LH와 FSH의 균형은 어떠한지, 남성호르몬이 높은지, 인슐린저항성이 동반되어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구들도 한약치료의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2024년 PCOS 난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서는 28개의 무작위대조시험을 분석했습니다. 한약과 침·뜸 등을 결합한 여러 통합치료에서 임신율과 배란율 개선이 관찰됐으며 일부 복합치료는 단독치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더 큰 규모의 연구도 있습니다.
2025년 비만형 다낭성난소증후군을 대상으로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72개 무작위대조시험, 5,308명을 분석했습니다. 전통 약물치료를 기존 치료에 병행했을 때 임상적 임신율뿐 아니라 인슐린저항성을 나타내는 HOMA-IR, BMI, 테스토스테론, LH/FSH 비율 등의 지표에서 개선이 보고됐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다낭성난소증후군에서 한약치료를 단순한 ‘몸보신’ 정도로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약을 먹을 때만 생리가 나오고 끊으면 다시 무월경이 되는 환자, 배란주기가 지나치게 긴 환자, 난포가 많이 보이지만 우세난포가 잘 자라지 않는 환자, 체중증가와 인슐린저항성이 동반된 환자라면 치료의 목표를 더 깊게 잡아야 합니다.
한의학적 치료에서는 같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도 환자의 상태를 똑같이 보지 않습니다.
체중과 대사문제가 중심인지, 무월경과 배란장애가 중심인지, 여드름이나 다모증과 같은 고안드로겐 증상이 심한지, 난임이 가장 큰 문제인지에 따라 치료 방향을 달리합니다.
이것이 한약치료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이번 달 생리를 한 번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난포를 성장시키고 배란하고 다시 월경하는 정상적인 생식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특히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에게 한약치료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생리를 억지로 맞추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란, 호르몬, 대사 상태와 난소기능을 함께 바라보는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치료의 핵심은 ‘생리를 나오게 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배란할 수 있는 난소의 리듬’을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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