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교수/노원인애한의원 대표원장
배광록 교수입니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면서 과배란 주사를 맞았는데 자라는 난포의 수가 기대보다 적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같은 용량을 쓰는데도 누구는 열 개 넘게 자라고 나는 서너 개에 그치는 상황이 반복되면 다음 주기를 준비할 자신도 함께 줄어듭니다. 진료실에서 이 이야기를 들고 오시는 분들이 꾸준히 계십니다.
여기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난소에 남아 있는 자원의 양과 그 자원이 주사에 반응하는 정도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검사 수치는 크게 나쁘지 않은데 실제 반응만 유독 약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수치는 낮아도 자란 난포가 고르게 성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응이 약하다는 것은 난포가 자라나는 과정에 필요한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난포는 어느 날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사를 맞기 훨씬 이전부터 여러 달에 걸쳐 서서히 준비되어 온 것들이 그 주기에 반응합니다. 그래서 주사 용량을 조정하는 일과 별개로 그 이전 몇 달의 몸 상태를 어떻게 만들어 두었는지가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이 구간이 바로 한약 치료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난포가 자라나는 힘을 신정과 기혈로 설명합니다. 신정은 몸이 가진 근본적인 자원이고 기혈은 그것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신정이 부족하면 반응 자체가 무디어지고, 기혈이 부족하면 자라나기 시작한 난포가 끝까지 고르게 성숙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여기에 순환이 정체되어 있으면 아무리 자원이 있어도 필요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방은 세 방향을 함께 고려하여 구성합니다. 신정을 채우는 약재로 바탕을 세우고, 기혈을 보충하여 자라나는 과정을 지원하며, 아랫배와 골반의 순환을 도와 그 힘이 난소까지 전달되도록 합니다. 어느 방향에 무게를 둘지는 진맥과 복진, 그동안의 시술 기록을 함께 보고 정합니다. 같은 저반응이라도 몸이 차고 지쳐 있는 분과 열이 위로 뜨고 잠을 설치는 분께는 전혀 다른 처방이 들어갑니다.
임상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우선 생활의 소모부터 여쭙습니다. 반응이 약한 분들 가운데는 만성적인 피로가 오래 깔려 있거나, 수면 시간이 계속 뒤로 밀려 있거나, 식사가 불규칙한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생식과 관련된 기능이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한약으로 바탕을 채우면서 이 소모를 줄여 나가면 컨디션이 먼저 달라지고 그 뒤에 다른 변화들이 따라오는 흐름을 자주 보게 됩니다.
준비 기간은 대체로 세 달 정도를 하나의 단위로 잡습니다. 난포가 깊은 곳에서 자라나 채취가 가능한 크기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채취 일정이 정해져 있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역산해서 계획을 세워 드립니다. 남은 기간이 짧다면 그 기간에 맞춘 처방으로 시작하고 이후 주기까지 이어 가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시술 중에 한약을 함께 복용해도 되는지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현재 사용 중인 주사와 약물을 알려 주시면 그 내용을 확인한 뒤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처방을 구성해 드립니다. 채취를 앞둔 시기와 이식을 앞둔 시기에는 약의 성격을 각각 다르게 조정하므로 일정을 함께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생활에서는 잠드는 시간을 앞으로 당기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밤에 회복되는 힘을 중요하게 보는데, 난포가 자라는 시기에 이 회복이 부족하면 준비가 더디어집니다. 여기에 하루 삼십 분 정도의 가벼운 걷기와 따뜻한 식사를 더하시면 준비 기간을 훨씬 밀도 있게 쓰실 수 있습니다.
한약 치료가 이 상황에서 갖는 강점은 반응을 만들어 내는 조건 자체를 여러 방향에서 함께 다룬다는 점입니다. 자원을 채우는 일과 그 자원이 움직이도록 돕는 일, 그리고 그것이 난소까지 전달되도록 순환을 여는 일이 한 처방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나누어 맡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비중을 계속 조정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이 시기에 특히 유용합니다.
채취 개수는 숫자 하나로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적은 수라도 고르게 성숙한 난자가 나오는 방향으로 몸을 준비하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가 됩니다. 지금까지의 시술 기록과 검사 결과를 가지고 오시면 어느 구간부터 손을 대는 것이 좋을지 함께 정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