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교수/노원인애한의원 대표원장
배광록 교수입니다.
시험관 시술을 이어 가시는 분들이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무겁고 온몸이 붓고 소화가 안 되며 감정이 쉽게 흔들린다고 하십니다. 시술 자체의 결과보다 그 과정을 견디는 일이 더 힘들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주사와 약물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몸에는 여러 변화가 생깁니다. 짧은 기간에 큰 자극이 반복되면 컨디션이 흔들리고 이전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시술 횟수가 늘어날수록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다음 주기의 조건이 된다는 점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기혈이 소모되고 흐름이 정체된 상태로 봅니다. 소모가 앞서면 피로와 무기력이 두드러지고, 정체가 앞서면 붓고 답답하고 감정이 흔들리는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경우가 실제로는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채우는 방향과 풀어 주는 방향을 함께 담은 처방이 필요합니다.
증상별로 살펴보면 접근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두통과 열감이 두드러지는 분께는 위로 뜬 열을 내리고 흐름을 정돈하는 약재를 씁니다. 부기가 심한 분께는 비위를 세워 수분을 처리하는 힘을 회복시킵니다. 소화가 불편한 분께는 정체된 것을 내리고 비위를 편안하게 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감정 기복이 큰 분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의 흐름을 열어 주는 방향을 더합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증상의 조합을 하나의 처방 안에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한약 치료의 강점입니다. 각각의 증상에 따로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는 몸의 상태를 겨냥하기 때문에 여러 불편이 동시에 정돈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임상에서 시술을 이어 가시는 분들께 한약을 함께 드리면 컨디션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가장 먼저 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덜 힘들고 소화가 편해지고 잠이 깊어졌다는 표현입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편안해지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 주기를 준비할 여력이 생긴다는 뜻이기 때문에 시술을 계속 이어 가셔야 하는 상황일수록 중요해집니다.
생활에서는 회복할 시간을 일부러 확보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술 일정에 맞추다 보면 다른 일정까지 몰아서 처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몸이 쉴 틈이 사라집니다. 시술이 있는 주에는 다른 약속을 줄이고 수면 시간을 앞당기는 것만으로도 회복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몇 번의 시술을 연달아 진행하신 분이라면 한 주기를 비우고 회복에 집중하시는 방법도 고려해 보실 만합니다. 쉬는 것이 시간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지실 수 있지만 소모된 상태로 이어 가는 것보다 나은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약 치료가 이 상황에서 갖는 강점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러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상태를 각각 따로 다루지 않고 그 증상들이 함께 생겨나는 몸의 조건을 겨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로와 부기와 소화 불편과 감정 기복이 함께 정돈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여러 가지를 각각 챙겨야 하는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실질적인 장점입니다.
또 하나는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몸이 지쳐 있는 시기에는 부드럽게 채우는 쪽으로, 여력이 생긴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쪽으로 처방의 성격을 바꾸어 갑니다. 지금의 컨디션에 맞추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반복되는 시술을 이어 가시는 분들께 특히 중요합니다.
준비 기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잡습니다. 다음 시술이 가까운 경우에는 그 기간에 맞추어 회복에 집중하고,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두세 달을 두고 바탕부터 채워 나갑니다. 일정과 현재 상태를 함께 알려 주시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 드립니다.
시술을 견디는 몸을 만드는 일은 시술의 결과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지금 어떤 증상이 가장 힘드신지 말씀해 주시면 그에 맞추어 처방의 방향을 잡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