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 교수/노원인애한의원 대표원장
배광록 교수입니다.
체중이 표준보다 적게 나가거나 마른 체형이신 분들이 임신 준비 과정에서 체중을 늘리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드시는데도 살이 붙지 않아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숫자로 나타나는 체중 자체보다 몸이 지닌 힘의 양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기혈이 부족한 상태로 봅니다. 먹어도 살이 붙지 않는 것은 대개 앞선 질문에서 말씀드린 비위의 힘과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혈이 부족한 상태가 겹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며 생리량이 적고 생리 기간이 짧은 특징을 함께 보이십니다. 어지럼이나 손발 저림, 잠들기 어려움을 말씀하시는 경우도 흔합니다.
임신 준비에서 이 상태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궁 내막은 매 주기 혈을 재료로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혈이 넉넉하지 않으면 내막이 충분히 자라기 어렵고, 배란 이후 고온기를 유지할 힘도 부족해집니다. 체력이 낮으면 시술 과정에서 받는 약물의 부담도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른 체형이신 분들께는 체중을 억지로 늘리는 일보다 기혈을 채워 몸의 밀도를 높이는 쪽을 먼저 권해 드립니다.
처방은 보기와 보혈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구성합니다. 다만 흡수할 힘이 약한 상태에서는 앞서 소화를 정돈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뒤에 혈을 채우는 약재의 비중을 높여 가면서 몸이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에 맞추어 조정합니다. 여러 약재의 조합과 비율을 개인의 흡수력에 맞추어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한약 치료의 뚜렷한 장점입니다.
임상에서 이런 분들이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변화는 아침이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식사량이 늘고 생리량이 회복되며 손발이 따뜻해지는 순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중은 이 변화들이 자리를 잡은 뒤에 서서히 따라오는 편이라 조급하게 숫자를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른 체형이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실수가 있습니다. 체중을 늘리려고 갑자기 식사량을 크게 늘리시는 것입니다. 흡수할 힘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만 늘리면 속이 불편해지고 오히려 식사 자체가 부담스러워집니다. 결국 며칠 만에 예전으로 돌아가고 몸은 더 지치는 흐름이 반복됩니다. 순서를 바꾸어 소화하고 흡수하는 힘부터 세우면 같은 양을 드셔도 몸에 남는 것이 달라집니다.
수면의 역할도 큽니다. 한의학에서 혈은 밤에 채워진다고 봅니다. 늦게 주무시는 습관이 이어지면 아무리 잘 챙겨 드셔도 혈이 충분히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임상에서 생리량이 줄었다고 하시는 분들의 생활을 들어 보면 수면 시간이 뒤로 밀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준비 기간에는 잠드는 시간을 앞으로 당기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생깁니다.
준비 기간은 세 달 정도를 하나의 단위로 잡습니다. 이 기간은 난포가 자라나 배란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도 이어져 있어서, 몸의 바탕을 바꾸어 다음 주기의 조건을 만들기에 적당한 길이입니다. 조급하게 한 주기만 보시기보다 이 정도의 시간을 확보하고 준비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한약 치료가 이 상황에서 갖는 장점은 몸을 채우는 일과 채울 힘을 만드는 일을 같은 처방 안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하는 약재만 넣으면 부담스럽고 소화를 돕는 약재만 넣으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두 방향의 비율을 사람에 맞추어 조정해 나가면서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씩 채워 가는 방식이 마른 체형이신 분들께 특히 잘 맞습니다.
여기에 근력을 조금씩 쌓는 가벼운 운동을 더하시면 좋습니다. 무리한 유산소 운동보다 짧은 시간의 근력 운동과 걷기를 꾸준히 이어 가시는 편이 기혈을 채우는 방향과 잘 맞습니다. 지금의 체력 상태와 생활 리듬을 함께 살펴보고 준비 계획을 세워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